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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도 봉래산에 올라...(야경,일몰포토)

알면서,,, 2007. 5. 1. 09:50

 #1 영도 봉래산에서 바라 본 오륙도. (사진은 꼭 크게 보세요.)

                                              

 부산 시내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 영도.

 영도에 대해 한번 알아보죠???

 

 #2 영도 봉래산에서 바라 본 감만부두.

 

  1.역사속의 영도
뭍에는 사나운 짐승들이 서식하고 있어 항상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으나 이 곳 영도는 섬이기 때문에 이들 맹수들이 없이 안전하였고, 또한 먹이(조개, 생선, 열매)를 구하기가 좋았고 기후가 따뜻하여 살기에 알맞은 곳이었으며, 신라시대부터 선조 중기까지는 목장으로 말을 방목한 곳으로 유명하다.
영도의 원래 이름은 절영도(絶影島)였다.
절영도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가 빨리 달리면 그림자가 못 따라 올 정도라 하여 끊을 절(絶), 그림자 영(影)을 붙여 절영도라 불려졌다.
영도의 육지와 인접한 섬으로써 말을 방목하기에 적당한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어 예로부터 나라에서 경영하는 국마장(國馬場)이 있었으며 명마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삼국사기열전」김유신의 조항을 보면 신라 33대 선덕왕이 삼국통일을 이룬 김유신의 공을 되새겨 김유신의 적손(嫡孫) 김윤중에게 절영도 명마 한 필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와 「동국여지승람」에서도 후백제의 왕인 견훤이 절영도 명마 한 필을 고려 태조인 왕견에게 선물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일제시대에도 영도를 「마키노시마(牧島)」라고 했는데 일본말로 말 먹이는 목장의 섬이란 뜻이다.
영도는 신석기시대의 동삼동패총, 영선동패총 등으로 보아 부산지방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곳이라 추정된다.
패총이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 껍질이 쌓여 생긴 것인데 그 속에는 여러 가지 사람들이 쓰던 유물이 썩지 않고 잘 남아 있어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영도는 선사시대에 여러 가지 생활여건이 당시로는 사람살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다

 #3 일몰전 감천의 모습(수산센타도 보이네요.)

 

4. 기 담 설 화

영도의 풍수지리설
영도는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학맥설(鶴脈設)이라 한다.
선사시대부터 영도는 산림이 울창하고 초목이 무성하여 목장으로 적격이었고, 수목이 청청하여 청학이란 이름이 유래되어 오늘의 청학동이라는 동명도 유래된 것이라 본다.
통계학적인 풍수설에 의하면 해운대에서 영도를 바라보면 마치 학(鶴)이 남쪽으로 나르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선사시대에는 동삼동과 지금의 해양대학교가 있는 아치섬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고 아치섬은 학의 왼쪽날개이며, 현 신선동을 거쳐 남서쪽의 남항동이 오른쪽 날개이고, 봉래산 산정은 학의 둥지로 남쪽으로 나르는 학맥설로 단정되었다고 한다.
왼쪽 날개격인 아치섬이 지형변동으로 동삼동 사이가 몰락되어 바다가 되므로 왼쪽 날개가 잘렸다 하여 영도에는 다음과 같은 액운설이 전래되어 왔다.
* 영도의 원주민은 흥망성쇠가 무상하여 타처로 이주할 것이며,
* 외지에서 이곳 영도에 이주한 자는 흥성하되 20년을 넘기지 못하며,
* 영도는 그림자 없는 섬이라 대대손손 면면치 못할 것이라는 풍수지리설이 전해져 왔다.
지금은 아치섬과 도로로 연결되어 있고 수년간의 새마을운동으로 영도를 깨끗하고 풍요로운 구로 만들어 많은 발전과 미래를 향한 발전을 계속하고 있어 지난날의 액운설은 이제 거의 잊혀져 가고 있다.

 #4 새로 건립되고 있는 감천-영도간 남항대교.

     광안대교에 이어 또다른 명물이 되길 바란다.

 

생도(生島, 주전자섬)
영도의 절경인 태종대 앞바다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바위섬들이 솟아있다.
그중 유독 섬하나가 주전자처럼 생겼다고하여 사람들은 주전자섬이라고 부른다. 예로부터 이 섬에서는 용변을 보거니, 불을 피워서도 안되고, 남녀가 정을 나누어도 안 된다는 세 가지 금기사항이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옛날 한 어부가 주전자섬에서 고기를 잡다가 갑자기 용변이 마려워 어구를 설치해 놓은 채 용변을 보았더니 그 날 이후부터는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어구만 계속 잃자 화병으로 결국 죽고 말았다고 한다.
또 같은 마을에 사는 어부들이 고기를 잡다가 매서운 추위를 이기지 못해 주전자섬에서 불을 피웠는데, 이 때 근처에 있던 늙은 어부가 이 섬은 옛날부터 불을 놓으면 큰 재난을 당한다는 말이 있어 당장 불을 끄도록했으나 어부들은 예사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이상하게도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으며 그 날 밤 꿈속에서 어부들은 주전자섬이 불덩어리로 변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후부터 이들이 하는 일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끝내는 원인 모를 병으로 앓다가 모두 죽고 말았다 한다.
또 하나는 남녀가 정을 일으키면 벼락을 맞거나 큰 봉변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로서 이 곳 주전자섬에 낚시꾼이 많이 오가지만 이 세 가지 금기사항으로 섬이 깨끗하게 보호되고 있다.

 #5 너무나 아름다운 감천의 일몰

 

장 사 바 위
봉래산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면 장사바위가 있다.
옛날 키가 9척이요 힘이 천하장사인 거인이 영도의 깊은 산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이 거인은 매일 마을로 내려와 밥을 얻어먹었는데 한끼에 쌀 한 말을 거뜬히 먹어치웠다. 마을에서 염치없이 밥을 얻어먹던 거인은 주민들에게 보답을 못해 송구스러워했다.
어느 날 거인이 마을서 저녁밥을 얻어먹을 즈음에 형체는 없고 커다란 그림자뿐인 괴물이 나타나 마을 처녀를 잡아가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후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여 주민들이 공포에 떨었으나 거인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고심하던 거인은 마침내 앞바다서 괴상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격투를 벌인 끝에 그림자를 껴안고 죽고 말았다. 이 그림자는 바로 이무기였다.
주민들은 거인의 시체를 거둬 봉래산 밑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그 후 거인의 무덤이 큰 바위로 변했는데 이 바위 모양이 마치 장사의 신발같아 오늘날 이 바위를 장사 바위라고 부른다.

 #6 해질녘 부산내항의 모습.

 

아리랑고개
지금의 유한여객 버스종점에서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길을 아리랑고개라고 한다. 영도에 찻길이 생기기 전에는 동삼동과 신선동을 잇는 유일한 길이었다.
옛날 이 고개는 산림이 울창하고 험한데다 길마저 구불구불하여 울면서 넘어간다 하여 아리랑고개라 한다. 당시 동삼동 앞바다에서 많이 잡힌 생선들을 머리에 이고 부녀자들이 도적들이 들끊었던 이 고개를 지나 부산장(현 부산진시장)까지 걸어가 팔아야 했던 고생스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7 부산의 자랑 자갈치시장.

    새로운 모습으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내기 고구마
조내기 고구마는 옛날 영도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다.
청학동, 동삼동 일원의 황토밭에서 재배하였으며, 붉은 색깔을 띠며 아주 작은 이 고구마의 맛은 잘 익은 밤맛에 비견 될 정도다.
일제때도 목도의 고구마로 명성을 떨쳐 일본인들은 이 고구마를 구하기 위해 영도에 줄을 이었다고 한다. 특히 조내기 고구마중 일산배기 고구마 맛이 일품이었는데, 현 청학2동에서 태종대로 가는 간선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천리교포교소가 나온다. 여기서 조금 올라가면 조그만 산등성이가 나오는데 이 곳이 일산배기이다.
옛날 조내기 고구마를 생산했던 이 일대는 지금 거의 주택지로 변모하여 자취를 찾기 힘들다.

 #8부산하면 떠오르는 자갈치시장, 용두산타워, 영도다리가 한눈에 보이는군요.

 #9 감만부두의 야경을 언제보아도 아름답고 그 위용이 대단한거 같아요.

 #10 감만부두.

 #11 용두산타워와 부산대교( 중간에 105층 롯데호텔 공사장 모습이 보이네요.) 

 

 #12 부산 내항모습 

 #13 왼쪽 끝에 보이는 송도해수욕장 과 남항대교.

 #14 영도 남항동의 야경

 

 #15 밑에 보이는 환한 곳이 영도 전차종점기념비가 있는 곳

 

 #16 부산 부산항 여객터미널.

 #17 부산 송도해수욕장.

   

 #18 감만부두와 광안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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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상속 풍경
글쓴이 : 오누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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